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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궁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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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鶴亭 八景(황학정 팔경)

작성자
황학정
작성일
2022-12-11 12:11
조회
333
黃鶴亭(황학정) 정자 뒤 약수터 위 암벽에「黃鶴亭 八景(황학정 팔경)」이 새겨져 있다. 각자를 새긴 것이「戊辰菊月(무진국월)」이라고 되어 있으니까 黃鶴亭(황학정) 건물을 慶熙宮(경희궁)에서 이곳으로 옮겨온 지 6년 뒤인 1928년 9월(음력)임을 알 수 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는데 73년 전에 黃鶴亭(황학정) 주변 경관을 읊은 八景(팔경)도 그대로 남아있을 리가 없다.
黃鶴亭(황학정)사원이며「朝鮮(조선)의 弓術(궁술)」간행 발기인인「錦嚴 孫完根(금엄 손완근)」이「朝鮮(조선)의 弓術(궁술)」을 편찬하던 시기에 쓴「黃鶴亭 八景(황학정 팔경)」을 21세기인 오늘에 음미해 보는 것도 결코 무의미하지는 않을 것 같다.

白岳晴雲(백악청운) : 백악은 인왕산을 뜻하는 것인즉, 구름이 맑게 갠 날의 인왕산을 말한것이다. 어설픈 녹음치마를 아랫도리에 감고 웃통을 벗은 여인의 가슴처럼 솟아 있는 바위봉우리 인왕산이 맑은 날씨에 선명하게 떠오른다.

紫閣秋月(자각추월) : 자각은 우리 黃鶴亭(황학정) 정자를 말한 것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인왕산 전체를 놓고 볼 때 아무래도 紫霞門(자하문)을 가리킨 것이 분명하다. 자하문 문루 위에 맑은 가을밤 달이 떠 있는 정경을 생각해야 겠다.
지금은 자동차 소음 속에서 그런 정경을 볼 수 없겠지만….

帽巖夕照(모암석조) : 우리 黃鶴亭(황학정)의 좌청룡능선 위에 있는 바위, 즉 감투바위, 모자바위, 철모바위 등으로 불리는 것이 帽巖(모암)이다. 모암에 석양 빛이 드는데 철없는 소년이 그 바위 위에 올라 黃鶴亭(황학정) 활쏘기를 구경하는 경우는 지금도 예나 다름없다.

榜山朝暉(방산조휘) : 해가 뜰 무렵의 인왕산을 읊은 것이다. 새벽 햇살이 인왕산 바위능선에 비친 광경이 마치 산에 방을 내 건 것 같다는 이야기.

社壇老松(사단노송) : 당시는 사직단 주변에 노송이 많았던 것 같다. 조선왕조가 도읍할 때 사직단을 만들었을 것이니 소나무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직단 주변에 노송은 간 데 없고 아카시아와 미루나무들이 하늘 높이 솟아 있다.

御溝睡楊(어구수양) :「어구」는 분명히 임금과 관계된 개울이나 배수로 일 터인데 어디에 있던 것인지 지금은 알 수가 없다. 작년 여름 우리 황학정에 어렸을 때부터 놀러 다녔다는 올해 76세인 朴俊榮(박준영)씨가 찾아와 黃鶴亭 八景(황학정 팔경) 각자를 보고 있기에 물었더니「어구」는 경복궁 담장 밖에 있던 궁의 배수로였는데 돌축대로 둑을 싸고 양쪽에 길이 나 있었고 거기에 수양버들이 쭉 늘어져 있었다고 했다. 효자동 전차길이 생기면서「어구」도「수양버들」도 모두 없어졌다고 한다.

禁橋水聲(금교수성) :「어구수양」과 마찬가지로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 역시 朴俊榮(박준영)씨의 말인즉「금교」는 지금 필운동시장 안에 있던 금천교를 말하는데 누상동과 옥인동 쪽에서 각각 내려오는 두 개울이 이 다리에서 만나 흘렀으니까 여름에는 물소리가 크게 들렸다고 한다. 지금은 다리는 헐리고 개울은 모두 땅 속 하수도가 되었다.

雲臺楓光(운대풍광) : 인왕산의 단풍을 노래한 것이다. 단풍빛이 구름대처럼 산허리를 감고 있다는 말이다. 73년전 黃鶴亭 八景(황학정 팔경)은 이제 모두 사라지고 변했다. 인왕산 바위산도 결코 73년 전 그때의 八景(팔경)일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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